일상

공항여행 떠나기 (PAPER 2009, 12월호)

YHJR2017 2010. 5. 7. 13:41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나는 연수가시는 아버지, 유학 가는 사촌누나, 그 유학 간 사촌누나한테 잠깐 놀러 가시는 외할머니까지 가족이나 친척들이 외국에 나가게 되는 일이 있을 때면 꼭 김포공항까지 나가서 배웅을 하곤했다. 내가 원해서 갔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어동화속 주인공이 'I can draw~ I can draw~' 하면서 비행기를 그리면 그 비행기가 진짜로 날아오르던 것처럼, 나도 함께 날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 인천 영종도로 국제공항이 이전되면서, 그리고 나도 가끔씩 공항에 갈 일이 생기면서부터는 비행기 뜨는 풍경 대신 '미지의 섬'까지 도달하는 길 자체에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캐리어를 끌고 공항택시 뒷좌석에 앉아 공항까지 가던 길과 여행을 마친 후 리무진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코끝 시리던 그 길, 여행의 시작과 끝만 맛보는 것만으로도 두문불출 방랑벽을 조금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시도는 꽤 괜찮은 효과를 안겨주었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굳이 안해도 되지만 해도 별 탈없을 일로 이 여행상품을 추천하는 것도 '별탈' 없을 것 같다. 딱히 중요한 건 없다. 돈과 시간도 그리 필요하지 않은 여행이다. 잠깐의 망각이면 된다. 우선 공항에 도달하자- 새로 생긴 9호선과 공항철도 급행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한 시간대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서행 갯벌에 펼쳐지는 짭조름한 붉은 칠면초의 잔상을 보면서, 또 길게 뻗은 영종대교를 보면서 테제베(TGV) 열차를 타고 프랑스 남부를 지나다가 스치는 해바라기밭과 금문교를 떠올리려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짓을 유치하지만, 그런 공상을 안하더라도 공항으로 가는 풍경들은 충분히 생경하고 신기하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면 우선 식당이나 지하 푸드 코트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다. 그 순간! 잠깐의 망각이 필요하다. 자신을 '아무 일 없이 공항에 온 1인'이 아닌 '비행기 탈 시간이 좀 남은 환승객 1인' 혹은 '스토 오버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1인' 정도로 여길 수 있도록….
앞의 절차가 끝나 '환승객1인'이 되었다면 4층에 있는 'Airstar Terrace'에 올라가보자. 다락방 같은 낮은 천장 아래에서 통유리로 된 창으로 비치는 출국장과 면세점,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테라스다. 바삐 출국수속을 하려는 보통 여행객들이 찾기 힘든 위치여서 조용히 책을 읽기도 좋고, 푹신한 소파에 누워서 음악을 듣는다면 금상첨화! 시간이 조금 남았다면 지하에 있는 사우나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거나, 2층의 우체죽에서 집으로 엽서 한 장을 보내보자. '저 잘있어요.걱정하지 마세요. 공항에서, 대한 드림.' 환승객이 아니라 스톱 오버까지 한 여행객이 되었다면, 슬며시 공항밖으로 나가보자. 을왕리와 왕산해수욕장까지 가는 공항버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영종도 안에서의 요금은 단돈 천원이다. 15분 만에 도착할 을왕리 겨울바다에서 두바이 스톱 오버 부럽지 않게 고독을 씹고 돌아오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쉽다는 생각 말고 교통카드 대신 일회용 티켓을 끊어 공항철도에 올라탄다. 데미안 라이스의<9 crimes>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는다. '구차하게시리…'라는 독백은 접어두고.  

원대한(daehangun@naver.com)  <PAPER 2009년 12월호>





사치스런 여유를 만끽하다. 홍대 찻집. '티테라스'

오랜만에 만난 열정 우먼 깜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고, 이곳에 왔다. 깜동생은 먼저 일어나고, 나는 사치스런 여유를 부리고 싶어 카페에 남았다. 'PAPER'를 읽었다. 사진을 보며 한장 한장 훌터보다가, 눈에 띄는 제목이 들어왔다. '공항여행 떠나기' 공항을 여행한다? 출발하기 위함도 아니요, 도착하기 위함도 아닌 그곳을? 궁금했다. 읽으면서 머릿속에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이 떠올랐다. 김포공항은 90년대 후반 자주갔던 곳이기에 당시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인천국제공항은 건물, 에스컬레이터, 게이트…뿐. 가는길, 공항 주변 풍경들이 내 머릿속엔 없었다. 나에게는 출발과 도착을 위한 건물일 뿐이었다. 여행을 위한 설레임으로 묻혀져 버렸던 걸까? 퇴화된줄만 알았던 내 상상력은 공항으로 출발한지 오래다. 상상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운 여행길. 공항을 쉬~ 둘러보고 을왕리 해수욕장까지 돌아본 나는 기사내용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공항여행을 답사했으니 떠날일만 남았다. 아니 출발할 일. 나의 여행지 목록에 추가. '공항여행(인천국제공항)'

홍대역을 지나 합정역을 향해 걸었다. 월요병은 어느새 완치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공항여행까지 다녀왔다.   

2009년 5월 3일 홍대'티테라스'
 



Damien Rice - 9 Crimes


'PAPER'기사중에 나온 노래다. 이별의 기로에 선 연인의 감정을 표현한 노래라고 한다.
난 이별의 기로에 서 있지도 않고, 이별같은 감성적이고 시적인 단어따위는 모르겠다. 
내 즐거운 여행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여행중 가끔 쓸쓸하고 외로움을 즐기고 싶을 때 듣는다면 좋을것 같다.
(듣고 있으면 많이 우울해진다.)